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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다(2)


(안개낀 골든게이트 위로 빛나는 수많은 별들)


절대자 하나님을 믿는다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의 생각과 사고는 그동안 배운 학문과 사상으로 인하여 일정한 사고의 틀을 만들어 가기 때문에 무신론적 사고방식에 훈련된 분들은 절대자 하나님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과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의 사고 방식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신앙은 윤리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절대 윤리는 절대 신앙에서 나온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이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는다는 의미요, 그분은 인격적으로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높은 수준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 것을 요구하신다.

하지만 그런 절대자를 무시하고 사는 분들은 그 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그분 자체를 인격적으로 무시하며 살기 때문에 삶 자체가 어떤 절대적 가치관에 기초를 두지 못하고 상대적 가치관에 따라 흔들리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주는 유일하신 여호와이시며 하늘과 별, 그리고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시고 생명을 주시므로 수많은 하늘의 천사들이 주께 경배를 드립니다.” (느9:6)

“나는 빛도 만들고 어둠도 만들며 축복도 하고 저주도 하여 이 모든 것을 다 행하는 여호와이다.” (사45:7)

성경에는 하나님의 고유한 이름을 여호와라고 말한다. 그분은 천지와 만물을 친히 창조하신 분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그분은 유일하신 분이요, 절대자요, 전능자요, 무소불능하신 분이요, 무소부재하신 분이다.

그런데 이 절대자 전능자 하나님을 믿을 때 사람의 의식구조는 많이 변하고 바뀌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므로 오는 영적 외로움과 고독감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적 충족감과 만족감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사람의 의식구조에서 많은 실재적 체험들로 채워지는데, 어려운 환경에서 일어설 수 있는 자신감이라든지, 위기를 당한 현실에서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 생명을 끊는 자살이라는 문제를 두고 한 번 생각해 보자. 모든 크리스챤들은 싶게 생명을 끊지 못한다. 자기의 생명도 소중하지만 타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체, 특히 사람의 생명은 너무나 소중하고 천하보다도 더 가치가 있다. 이런 가치관은 아무도 스스로 만들지 못한다. 하나님이 모든 생명체의 창조주라는 믿음이 없으면 절대로 생명 존중의 가치관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도 소중할뿐더러, 타인의 생명도 절대로 소중하기 때문에 자살이나 타살을 쉽게 실천할 수 없다.

또한 공산주의자들은 무신론과 물질주의 사고를 하기 때문에 공산주의 자들 치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긴적이 없다. 그동안 공산주의 이념이 휩쓸고 간 나라들을 보라. 예를들어 소비에트 유니언(구소련), 모택동 시절의 중국공산당, 북한, 큐바,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즈, 베트콩, 동구라파 국가들, 모두 한결같이 수백만에서 수천만명의 사람들을 살해하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과 공산주의 이념은 절대로 함께 공존할 수가 없다. 사실 공산주의라는 이념도 하나의 종교에 해당된다. 그들의 신은 무신론이고,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상의 무신론적인 파라다이스이고, 공산주의자들만의 복락을 만들어 가려는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이 세상이고, 기독교의 목표는 하나님의 왕국이다.

따라서 현명한 사람은 반드시 공산주의를 싫어할 수 밖에 없고, 전능자요 절대자인 하나님을 찾아갈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와 생명을 추구하고, 영원한 생명을 지향해 나갈 수 밖에 없다.

(이성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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