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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요나


사람은 좋은 환경에 있으면서도 불행한 사람이 있고,

나쁜 환경에 있으면서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

대궐같은 집에서 산해진미를 먹고 살아도 불평하는 사람이 있고,

초가집에서 찬물에 밥 말아 김치 깍두기만 먹고 살아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한국의 재벌 2세로 태어나 세상적으로 무엇하나 모자랄 것이 없는 완벽한 행복의 조건 속에 있는 사람도 자살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들에게 무슨 아쉬운 것이 있겠는가? 하지만 행복이 그런 물량적이고 세속적인 것이 아니기에 자살로 인생을 마치는 비참한 사람도 있는 것이 아닐까?


구약성경 요나서에 나오는 주인공 요나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하나님이 내린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엉뚱한 지역으로 도망가다가

하나님이 풍랑을 보내 그가 가는 배의 앞길을 가로 막는 것을 알고

자신을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하여 그 한 몸 희생으로 그가 탄 배를 구원해 주었고,

정작 자신은 바다에 던져진 후 큰 물고기 배 속에 들어가서 3일 밤낮을 보내면서

행복에 겨워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 사람이다.

3일 밤낮을 큰 물고기 배속에 들어가서 살아 나온 사람은 아직 요나 한 사람 뿐 일 것이다.

당연히 요나는 물고기의 밥이 되어 그 배속에 들어갔으니,

소화되고 배설물이 되어 버렸어야 할 존재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요나는 물고기 배 속에서 죽지도 않고 살아서

그 짜증나고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감사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었을까?

사실 그는 물고기 배 속을 무덤과 같은 곳이라고 언급하였다.

그러면서 마지막 이렇게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감사의 노래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내가 서약한 것을 지키겠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욘2:9)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서도 감사하고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안락한 환경, 풍성한 생활, 아름다운 자연, 친구들의 우정, 가족들과의 따뜻한 생활,

이런 것들과는 거리가 너무나 먼 환경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었을까?

바로 하나님의 기적 때문이었다.

그가 바다 속으로 던져 졌을 때, 하나님이 그를 내버려 두셨다면

그는 바다 속에서 영영 인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요나를 위해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요나를 구원하도록 조치하신 것이다.

요나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던 것이다.

즉 하나님의 큰 기적을 현재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기적의 현장이 어떤 환경이라도 좋다.

그곳이 불속이라도 좋고, 물속이라도 좋고, 우주 한가운데라도 좋다.

하나님이 현재 살아계셔서 자신을 돌보고 계신다는 기적을 지금 체험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체험이요, 축복이요, 행복이요, 감사할 조건이 되는 것이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다니엘의 세 친구는 불 속에 들어가서 그 하나님을 체험했고,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서 그 하나님을 체험했고,

베드로는 감옥 속에서 그 하나님을 체험했다.

그리고 요나는 물고기 배 속에서 그 동일한 하나님을 지금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신나고 행복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내가 있는 환경이 지옥 같아도 괜찮다.

불 속이라도 좋다. 물 속이라도 좋다.

아니 사자의 굴 속이라도 괜찮다.

그곳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만 있다면 이건 신나는 일이다.

기적을 체험할 수만 있다면 어떤 환경, 어떤 조건도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거기에 최고의 행복과 감사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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