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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포로인가? 선교사인가?

(다니엘과 친구들 이야기)



다니엘이라는 유다 청년과 그 친구들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

네 사람들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 유다 왕국을 침략했을 때,

포로로 잡혀서 바벨론으로 끌려 온 청년들이었다.

당시 이 청년들의 비참한 상황을 우리들은 다 이해 할 수 없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그들의 뼈져린 아픔을 짐작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바벨론의 군사들에 의해 쇠사슬에 묶이어 불타는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을 뒤로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면서

얼마나 비참하고 슬픈 마음들이었을까?

또한 전혀 가보지 않은 이국땅 바벨론으로 끌려가면서

앞으로 그들의 앞길에 어떤 비극이 예비되어 있는지,

어떤 슬픈 일들이 도사리고 있는지?

또한 어떤 역경이 기다리고 있는지?

그들의 미래는 한치 앞을 예견할 수 없는

캄캄한 어둠의 길을 가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궁에 도착하여 포로생활을 시작하였을 때,

그들의 환경은 포로로 끌려 올 때의 살벌한 환경보다는

느부갓네살왕의 호의로 왕궁 특수학교에서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를 습득하는 특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포로답지 않게 특혜를 누리는 삶이 주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왕이 하사하는 산해진미와 포도주를 특혜로 받아야 하는 위치에서

그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거절하고,

오로지 채소와 물만 요구하여 그들의 신앙적 요구를 관철시킨 후,

마침내 그들이 느부갓네살왕과의 특별 인터뷰에서

뛰어난 두각을 나타내 보임으로서

그들은 왕의 특별고문으로 발탁되어

포로 신분에서 일약 권력의 중심부에서 일하는 왕의 신하들이 되었다.

어느날 느부갓네살 왕이 이상한 꿈을 꾸면서

마침내 그들은 같은 지위에서 일하는 왕의 고문들 보다

다른 특별한 두각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그것은 왕이 꾼 꿈을 통해서 장차 일어 날 세계 패권 국가들이

어떻게 이루어 질 것인지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특별 계시이기도 하였다.

느부갓네살 왕은 그의 특별 고문들, 박수, 술객, 점장이, 갈대아 술사들을 불러서

그의 꿈을 진술하고 그 해석을 보이라고 엄명을 내렸으나,

아무도 그 꿈을 이야기하고 그 해석을 보이는 사람들이 없어서

왕이 진노하여 모든 술객들과 박수들과 점장이들과 갈대아 술사들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게 되었다.

이에 다니엘이 그 소문을 듣고 용기있게 왕에게 나아가

3일간의 여유를 구하고 그가 의지하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왕이 꾼 꿈을 보게되고,

그 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를 하나님으로 받은 후

3일만에 느부갓네살 왕에게 나아가 왕이 꾸었던 꿈과 해석을

정확하게 밝혀 줌으로서 하나님의 지혜를 바벨론 제국의 왕과 대신들에게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드러내 보여 준 사건이 되었다.

이 때 느부갓네살 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神)이시오,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 (단2:47)

이 장면을 자세히 생각해 보면 정말 기가막힌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불신자 중의 불신자이다.

그런데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을

“모든 신들의 신(神)이시오,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건 놀라운 신앙고백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다음 장에 보면 더 놀라운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야기는 다니엘의 세 친구들,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니엘의 꿈 해석 사건이 있은 후 느부갓네살 왕은

그 꿈에서 본 것과 같은 거대한 신상을 세워

자기 왕국의 고위 관리들과 지방 관리들을 불러서

그 신상에 절하도록 우상숭배를 강요하였다.

하지만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절대로 우상에게 절할 수 없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이었기에

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절은 커녕 고개도 숙이지 않고

뻣뻣하게 서서 우상을 조롱하는 마음으로 서 있다가

고발을 당하여, 자존심이 구겨진 왕이 칠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을 만들어

세 청년들을 집어넣도록 하여 자기 명령을 거역하는 자들은

어떤 형벌을 받는지 본때를 보여주려고 하였다.

하지만 칠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에 들어 간 세 청년들은

불속에서 타서 재가 되어야 할 터인데,

타기는커녕 풀무불 속에서 왔다갔다하면서 건재해 있는 것이 아닌가?

놀래 기절할뻔한 왕이 급히 세 청년들을 불러내보니,

그들은 머리터럭 하나 타지않고 온전한 몸으로 보존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때 느부갓네살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더라.” (단3:28~29)

놀라운 고백이다.

느부갓네살 왕의 입에서 이런 고백이 나오다니,

그는 하나님을 찬양할 뿐 아니라,

자기 왕국에 사는 모든 백성들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면 안된다고 선포까지 하였다.

무엇이 세계 최강의 권세를 가진 느부갓네살 왕으로 하여금

이렇게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도록 만들었는가?

바로 포로로 잡혀 온 초라한 네 청년들의 불굴의 신앙에 대하여

하나님이 응답하신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한번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포로로 잡혀 온 이들 네 유다 청년들은

하나님이 보실 때 포로로 보내신 것인가?

아니면 선교사로 보내고 있는 것인가?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포로로 잡혀 가는 처량한 신세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면 이들은

그 때 선교사로 이방인 대 제국 바벨론으로 보냄을 받은 사람들인 것이다.

요즘 선교사라고 하면 교회나 선교 기관에서

거창한 선교사 안수식과 겸하여 선교사 파송식을 해서

선교사로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참 귀한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안목에서 보면

적군의 침략으로 약탈당하고 망한 나라에서 포로로 잡혀서

초라하게 쇠사슬에 끌려가는 이 청년들이

장차 세계 최강의 제국 바벨론 한 복판에서

그것도 왕 앞에서 당당하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선교사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하나님은 초라한 포로 소년들을 선교사로 사용하시어

세계 최강의 제국 바벨론 안방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주시고, 복음을 증거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Rev. Su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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