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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 신문 특종기사


<지금부터 여리고일보에 발표된 오늘의 특종기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에 갈릴리 선지자 예수님이 여리고를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여리고 세무서장이신 삭개오 서장님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두 분은 삭개오의 집에서 몇시간의 담화를 나눈 후 중대한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삭개오 세무서장님의 발표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첫째 그의 재산 10억불 중 5억불을 사회에 환원하여 가난한 서민들의 생활 안정과 구호 기금으로 사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만일 그동안 여리고 세무서 세무 행정에 부정한 일이 있었다면 속속들이 파헤쳐 세금을 과다하게 납부한 사람이나, 억울하게 세금을 납부한 모든 사람에게 납부 금액의 4배를 환불해 주시겠다는 발표였습니다. 참! 살다보니 놀라운 일도 다 있습니다. 삭개오 세무서장이 이렇게 변화되시고 이런 발표를 하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어찌 되었건 우리 서민들로서는 쌍수를 들어 그 발표를 환영하는 바입니다.>


이 사건은 성경 누가복음 19장1절에서 10절에 나오는 사건을 현대 버전으로 각색해 본 것입니다. 오늘날 같으면 세무서장이 이런 발표를 했다가는 검찰로부터 소환을 당하고, 특별조사를 받으면서 어느 기업으로부터 얼마나 뇌물을 받았는지 조사받느라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2천년전 여리고에서 이런 발표가 나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아마도 여리고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당시 사회에서 어느 누가 이렇게 자기의 재산을 사회와 소외된 계층을 위해서 사용하겠다고 내 놓겠습니까? 아마도 특종기사 중의 특종기사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삽시간에 온 여리고 사람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었을 것이요, 그런 수전노 삭개오를 변화시킨 사람이 누구냐 하는 문제에 이목이 집중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바로 갈릴리 나사렛에서 온 선지자 예수님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사람들은 다시한번 예수님을 새롭게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했을 때, “가서 자네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자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리고 나를 쫓으라.”고 했더니, 그 부자 청년이 심히 근심하면서 물러갔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시험들었다는 말입니다. 만일 이성재목사 같았으면 그 부자 청년이 시험 들까봐 절대로 예수님처럼 말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도리어 “그래, 부자인 자네가 나를 따르겠다니, 말리지는 않겠네. 하지만 자네 같은 부자가 나와 같이 거지 노릇하며 생활할 수 있겠나? 내가 자네 이름을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기록해 놓을테니, 자네 재산 중 일부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헌납하게.” 아마 이렇게 밖에 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삭개오와 부자 청년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 차이는 간단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자기의 주인과 같은 돈을 내 놓았다는 것이고,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강요에 그만 시험이 들어 멀리 도망갔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전세계가 경제문제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나라마다 경제는 발전하고 국민소득은 높아졌는데, 생활이 행복해 졌다고 하는 사람은 눈을 씻고도 찾아 볼 수가 없으니, 이게 무슨 조화일까요? 주머니에 돈이 두둑해 진 사람이나, 주머니가 텅 비어 홀쭉한 사람이나 한결같이 불행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도 경제가 발전하기전보다 경제가 발전하여 국민소득이 증가한 이후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었다는 불행한 소식입니다. 어차피 행복하지 못할바에야 마음만큼은 깨끗하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의 원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삭개오와 부자청년, 두 사람은 그 후 어떻게 살았을까요? 누가 더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아마도 부자 청년은 물러 받은 재산을 지키고 관리하느라고 진땀을 흘리며, 불안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보다는 좀 여유있는 생활은 했겠지요. 하지만 삭개오는 그 동안 자기의 삶을 짓누르는 모든 부정과 불의를 예수님 앞에서 깨끗이 떨쳐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휫바람 부르며 살았을 것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물질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형제, 자매여, 당신의 돈주머니가 회개하기 전까지 하나님은 당신이 진정으로 회개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5절에도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이 소유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행복과 풍요로움을 누리고 사시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이성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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