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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는 성도들이 행복한 꼴을 못본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자기 마음대로 멋대로 사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사람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불신자들은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누구 눈치도 볼 것 없이 살아간다.

그래도 큰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별 탈이 없다.

그러나 진정한 크리스챤들의 삶은 다르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살지 못한다.

만일 자기 뜻대로만 살다가는 하나님으로부터 가끔 한방씩 얻어맞는다.

그래서 매사에 하나님 눈치를 살펴야 한다.

그것은 마치 대가족이 사는 가정에 가장 높은 어른의 눈치를 살피고,

뜻을 물어보는 것과 같다.

그런데 또 하나의 훼방꾼이 있다. 바로 원수 마귀다.

이 놈이 크리스챤들의 행동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놈은 더욱 크리스챤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행복하게 사는 꼴을 못본다.

어떻게 하든 그 축복과 행복을 빼앗아 가려고 안달을 한다.

욥이 동방의 의인이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자녀들도 많이 낳고,

물질의 축복도 많이 받았다. 그리고 늘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하였다.

그런데 마귀란 놈이 욥을 가만히 노려보고 살피고 있다가

욥을 무너뜨리고 그 가정의 행복을 빼앗아 가려고 작정을 하였다.

그리고 사용한 방법이 자기는 건드릴 수 없으니까,

하나님께 찾아가서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하여 욥을 송사하고,

거짓 술수를 부려서 욥의 행복을 빼앗아 간다.

그것은 마귀가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완전히 발가벗겨서 최악의 고통 속으로 몰아 넣었다.

먼저 물질을 몽땅 빼앗기고, 자녀들 모두 부모님 먼저 죽고,

아내마저 저주하고 그의 곁을 떠나고,

마지막 그의 육체도 만신창이가 되어 걸레 조각처럼 되었다.

정말 욥처럼 되었다면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도 한번 쯤 하나님을 의심하고,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실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신앙에 무엇이 문제인가를 고민하고 실의에 빠질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마귀는 대적자, 우는 사자같이 삼킬자를 찾는자라고 말하고 있다. 욥의 승리의 스토리는 우리가 성경 욥기에서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도 한 때 고통 속에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이런 일이 자기에게 가능한 일인가 하고 의심하기도 했었다.

욥의 의심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에 대하여 회의를 가졌던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으로서 이를수 있을까? 하는 의심인 것이다.

해답은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말 굳건한 믿음은 양지에서 피어나는 꽃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비 바람 눈보라 속에서 굳건히 피어나는 꽃에서 보는 것이다.

욥에게 있어서 한가지 부족한 방패는 그에게는 구속자를 아직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마귀에게 공격을 받을 때, 그를 보호해 줄 구속자, 보호자, 변호자를 찾지 못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당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기 19:25-26)

나는 욥기를 읽을 때, 이 말씀이 최고의 보석 중의 보석이라고 생각한다.

욥은 마귀가 빼앗간 행복을 잃고 불행 속에서 구속자, 즉 오실 메시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다.

이것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을까?

세상의 풍요로움과 편안함은 결코 완전한 행복이 아니다.

마귀는 이런 행복은 언제든지 우리로부터 빼앗아 갈 수 있다.

그런데 마귀가 도저히 빼앗갈 수 없는 영원한 행복이 있다.

바로 영원한 구속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이다.

마귀가 이것은 빼앗아 갈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의 진정한 행복이 있다.

(Rev. Su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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