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보니, 많은 굴곡이 있다. 아무도 인생을 평탄하게 순조롭게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이 세상에 내 던져진 존재들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이 계획하고 태어난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그래서 미래를 전혀 알지못하는 가운데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 길에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이런 모양으로 저런 모양으로 만나고 헤어지고, 상처받고, 위로받고, 싸우며, 화해하면서 살다가 간다. 영원한 세계로 간다. 죽음 저너머 어디로 가는지 알고 가는 사람이 있고, 모르고 가는 사람이 있다. 그 세계를 제대로 알고 살다가 가는 사람들은 그래도 행복하다.
이 시간 위의 사진에 나오는 주인공은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이지만, 아주 중요한 사람이 한사람 나온다. 바로 구레네 시몬이라는 사람이다. 이 장면 이전에 그는 한번도 성경에 언급이 없다가 아주 중요한 순간에 그가 나타난다. 나는 그의 과거를 잠깐 상상해 보았다. 그는 구레네 출신이다. 구레네는 지금의 리비아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은 시몬이다. 그가 왜 구레네에서 유대인의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왔다가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만났을까? 그는 정말 예수님이 불쌍해서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간 것일까? 여기서 한번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유대 지방이 아닌 먼 이방인 지역 구레네에 가서 살았다. 왜 그가 먼 북아프리카로 이사를 갔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 정치적인 불안정한 상황, 아니면 이방군인들에게 어렸을 때 노예로 팔려갔던가, 당시 이스라엘 상황은 소시민들이 살기에 너무나 많은 고통이 있었다. 그래도 그는 유대인이기에 일년에 한번쯤은 고향땅을 찾아가서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도 주로 유월절에 예루살렘땅을 밟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마지막해 십자가에 못박히는 유월절 그 때 예루살렘을 찾았고, 유월절 제사를 드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 사이 약간의 짬을 내어 그는 오랫동안 와 보지 못한 예루살렘 시내를 구경하고 싶었다. 그는 아침 일찍 거리로 나가서 예루살렘 거리 여기 저기를 걸어보고, 상점들도 구경하면서, 마침내 여러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서보니, 한 젊은 청년이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십자가를 지고 비틀거리면서 걸어가는데, 로마 군인들이 몇사람 따라가면서 비틀거면서 힘겨워하는 그 청년 죄수를 날카로운 채찍으로 내리치면서 고통을 가하고 있었다. 이건 구경거리가 아니라 보는 것 자체가 고통거리였다. 따라가는 한무리의 사람들은 로마군인들이 그 청년에게 채찍을 내리칠 때 마다 비명을 질렀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고 고통스러운데, 직접 채찍을 맞으면서 힘겹게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 청년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래도 그는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고 쓰러졌다가도 또 일어나고, 쓰러졌다가도 채찍맞고 또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 가는데, 마지막 힘을 다해 십자가를 지고 끌고가던 그 청년은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고 길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로마군인들은 그를 일으켜 세워보려고 몇 번 더 채찍을 내려쳤지만 죽은 듯이 누워 일어서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로마 군인 중 한명이 갑자기 그 무리들 속에 키가 매우 훤칠한 구레네에서 온 구경꾼 시몬을 지명하더니, “야, 너 이리와.” 그리고는 “지금 이 십자가를 네가 져.” 구레네 시몬은 그때 로마 군인들의 서슬이 시퍼런 명령에 못한다고 거절하지도 못하고, 억지로 끌려가 그 십자가를 지고 형장까지 가게 되었다. 참 야속하고 얄궂은 운명이다. 이렇게 해서 사형수 예수와 그레네 시몬이 만나는 첫 장면이 된 것이다.
시몬은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면서 아마도 이렇게 두털거렸을 것이다. “참 오늘 재수가 옴 붙었네. 내가 왜 사돈의 팔촌도 아닌 이 사형수 죄인 청년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하나? 참 기가막히네?” 어느 누군들 이 골고다로 오르는 사형수 죄인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겠는가? 그의 제자들도 다 도망가고 뿔뿔히 흩어져 버린 사형수 아닌가? 그로부터 병고침 받은 사람들, 소경이었다가 눈 뜬 사람들, 하물며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도 한둘이 아닌데, 그리고 광야에서 배고플 때 그분에게 공짜 떡을 얻어먹은 사람도 수천명인데, 이렇게 사형수가 되어 십자가 지고 골고다로 오르니, 그들 중 한사람도 나타나지 않고, 하물며 제자들이라는 인간들도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고 그를 버린 이 시간. 구레네 시몬은 걸려 든 것이다. 당연히 제자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나타나 그분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진정한 제자들이었다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 어려운 순간에 제자들은 오도간데 없고, 구경하던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졌다니, 참 기막힌 일이 아닌가?
이렇게 속으로 두털거리면서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던 시몬은 처음에는 불쾌하고 억울한 감정이 솟구치다가 조용히 뒤따라 오는 그 죄수를 힐긋힐긋 쳐다보니, 온 몸과 얼굴은 피투성인데, 그에게는 다른 어떤 사람에게서도 보지 못한 신비하고 온화한 평화가 가득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시몬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이분이 과연 누구인가? 십자가형을 받아야 할 만큼 사악한 죄인인가? 시몬은 혼란한 마음을 골고다 형장까지 십자가를 지고 갔다. 그 사이에 그의 마음에는 많은 수수께끼가 밀물처럼 지나갔다. 마침내 골고다 언덕에 도착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그 십자가가 세워지고, 다른 두 죄수와의 대화도 엿듣고, 그리고 그분의 십자가 가상 칠언도 들었고, 하늘이 진노의 모습으로 우러렁거리며 변화하는 모습도 보고, 그를 사형집행한 로마군인 천부장이 “이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하는 고백도 듣고, 시몬은 착잡한 마음으로 의문을 가지고 숙소로 돌아 온 후 유월절 제사에 참석하려고 했으나, 도저히 그의 마음이 고통스러워 누워서 쉬면서 그분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는 자기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내가 그 십자가를 지고 간 것이 매우 잘한일이야.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그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았다면 누가 그 십자가를 지고 간담. 정말 보람된 일을 했어.”
구레네 시몬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을 것이요. 그리고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성령강림도 체험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고향 구레네로 돌아가 자기의 생생한 체험담, 십자가의 길에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올라간 체험과 그 이후의 모든 사실들을 그의 동네 사람들에게 하나씩 증거했을 것이요, 그후 그의 동네에는 그의 전도로 교회가 세워져 북 아프리카 전역으로 전도가 활발히 전개되었다고 생각한다. 그후 마가와 사도 바울의 서신에 단 두번 그의 가족들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마가복음 15:21)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로마서 16:13)
그레네 시몬의 두 아들은 알렉산더와 루포라는 사실과 루포의 어머니 즉 구레네 시몬의 아내가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나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에 그녀는 로마에 거주하면서 로마 기독교회의 중요한 일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녀를 일컬어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고 할 정도로 사도 바울과 가까웠고, 신앙심이 깊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미 초대 교부들의 증거에 의하면 구레네 시몬은 북아프리카 지역의 감독으로 일을 했고, 그후 순교로 일생을 마쳤는데, 그의 두 아들도 훌륭한 신앙인으로 전도자의 일생을 살았다는 것과 그의 아내도 신실한 신앙인으로서 로마 기독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고 보겠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제자들도 팽개치고 도망간 자리에서 힘겹고 어려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지고 골고다까지 운반해 주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십자가, 그것은 복된 십자가입니다. 시몬은 그후 이렇게 간증했을 것입니다. “내가 억지로 끌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을 때는 기분이 상하고, 억울하고 분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후 내가 그분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이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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